얼마전, 쿠키런 시리즈로 유명한 데브시스터즈의 인기 게임 ‘쿠키런킹덤’ 유튜브 채널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요. 바로 게임 캐릭터가 나전칠기 명장 제1호 손대현 장인의 손과 기술로 하나의 작품으로 재 탄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게임과 무형유산이 만났다니, 생소한 조합이죠? 하지만, 게임과 무형유산 나아가 국가유산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망자의 안녕을 기원하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함께하는 토우가 내 옆의 친구라면 어떨까요? 프롬히어는 상상력을 발휘해, 죽음과 삶을 아울러 이르는 토박이 말 ‘죽살이’에 ‘토우’를 붙여 죽살이 토우를 만들어봤습니다. 신라시대 토우 유물은 장식적이면서 엄숙한 중국, 일본 토우와 달리 장난감 정도의 크기에 익살스럽고 천진하게 표현되어요. 바쁜 현대사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살이 토우는 어떤 말을 건넬까요? 전주로 온 죽살이 토우를 소개합니다.🙂
흔히 일을 마무리할 때 ‘매듭짓다’라고 하죠.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완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름의 중턱인 8월에 서서 상반기를 잘 매듭지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실을 꼬고 연결하듯 삶을 지어나가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매듭장 두 분을 소개드립니다.
매듭장 김시재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해요
1976년생이고 서울 용산구에서 태어나 서울에 쭉 살았어요. 어릴 적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지루하다는 감정이에요. 6학년쯤이었나? 햇볕을 쬐면서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타박타박 걸으면서 ‘너무 지루하다. 언제쯤 19살이 될 수 있을까? 언제 독립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요. 맏이였고 동생들을 당연하게 돌보던 때였거든요. 늘 어른같이 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무용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현대무용을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공연도 하고, 시나 도 대회도 나가고요. 대학에서도 무용을 전공하긴 했는데 진로를 정해야 하는 갈림길에서는 무용을 선택하지 않았죠. 오랫동안 하다가 그만두기는 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예술이라는 큰 틀에서는 매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그 경험들이 저에게 너무 좋았고요. 무용하면서 꾸준함과 인내심을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때 훈련한 것들이 지금 매듭을 하는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요즘 ‘무형유산 매개자’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유관 기관과 기업들을 인터뷰하고 있어요. 무형유산을 매개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 역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매개의 대상이 전승자인지 소비자인지 등 여러 측면에서 고민하고 있죠. '매개'라는 단어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굉장히 넓고 깊어요. 이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집니다.
‘문화 매개자(Cultural Intermediary)’ 개념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짓기』(1979)에서 시작됐어요. 예술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대중문화와 함께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예술이 친숙한 일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매개자는 탄생했죠.
무형유산 매개자도 비슷한 질문에서 출발해요.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무형유산이 다시 친숙한 일상이 될 수 있을까?' 무형유산은 전통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죠. 그때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길 바라는 거예요.
그게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들을 보면 상상이 쉬워집니다. 우리는 여전히 백자 그릇을 애용하고, 금속 수저를 사용하죠. '막걸리 키트'를 사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고, 김장철에 가족과 동네 사람들과 함께 김장을 하고 보쌈을 먹기도 해요. 해녀의 부엌이나 해녀학교처럼 해녀문화를 콘텐츠화하고 계승하는 사람들도 있고, 강릉단오제처럼 큰 축제도 추천드려요.
하지만 이어지는 것들보다 사라지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게 현실이에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무형유산 매개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된답니다.